우리는 카메라랑 달라.
모든 것이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걸러내는 그물이 있고 백을 봐도 10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런데 그것을 겉으로는 책정할 수 없으니 그저 막연하게 추측할 뿐이다.
아침 출근을 하면서 내 루틴 라이온의 정신을 듣는데도 특별히 집중할 수 없었다.
집중하면 그 내용 하나하나가 내 마음속에서 튀어나와야 하는데 이게 귀에 들어올 수는 있지만 마음에서 튕겨 감정으로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우리는 집중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 감정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다른 동물들은 생존을 위한 감정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실현이라는 것을 최종 목적지로 삼는 것을 보면 생존 이상의 무언가를 유일하게 추구할 수 있는 동물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함께 존재한다.
자신만의 이기적인 꿈을 실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꿈으로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관계 속에서 뭉치거나 함께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본다.
감정이라는 게 정말 무섭기도 하고 정말 따뜻하기도 하다.
끔찍할지 모르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칼자루를 잡을 것이 아니라 칼날을 손으로 잡고 있는 것처럼 다뤄야 할 것 같다.
너무 힘을 주면 칼날에 잘릴 것이다.
그러나 힘을 강하게 들이지 않으면 그 새파란 칼날도 가슴에 품고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은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옳고 잘하면 다른 사람도 그에 맞게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확률이란 반반이다.
뭐가 옳은지 틀렸는지 모르겠어.그러나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단점은 그런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굳이 짊어지지 않아도 될 걱정이라는 부담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육체 노동을 할 때 입은 짐과는 차원이 다르다.
젊은 시절, 벽돌을 지게에 메고 운반한 사람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무거운 벽돌을 짊어지고 계단을 오르거나 가파른 언덕을 지나 목적지에 도달한 후에 짐을 내렸을 때의 그 홀가분한 마음이다.
그러나 이 걱정이란 놈은 밤 자고도 내놓지 못하고 24시이다.
그래서 육체적인 짐을 내렸을 때 편한 마음을 한순간도 만끽할 수 없다.
가끔 쉬지 않고 예고 없이 이 걱정이란 놈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카메라가 아니다.
무엇 하나만 봐도 자신에게 큰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고 운동장에 얼마나 많은 학생이 있어도 자신의 아이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간다.
우리는 우리가 알아서 찾는 거를 찾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스펙트럼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은 정말 얼마나 피곤할까?나는 그런 피로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을 보고발견하는 단순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 우리의 생각으로 조심해야 한다.
물론 매사 문제 될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이것도 하나의 축복이다.
다만 아무 감흥도 없이 지나갈 수 있는 것이라도 개선해야 할 점을 발견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다만 푸념으로 끝나지 않은 채 무언가를 변화시키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우리는 혼자의 힘을 과소 평가되고, 때로는 크게 평가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과 환경에서는 절대적으로 혼자의 힘을 과소 평가한다.
그리고 나 정도는..나 혼자는..이런 생각에서 자신의 생각이 전하고 준 실마리를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
사람은 원하는 것만 보려고 하기 때문에 다른 것을 볼 수 있도록 시선을 돌리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저도 그게 큰일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정해진 범위가 존재한다.
저의 경험의 범위저의 지식의 범위 내의 인맥의 범위.등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때는 그 틀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때로는 또 다른 새로운 사실이 틈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만약 경계가 없다면 어떨까?제 심리적 경계가 없다면 말이죠.경계가 아니라는 것은 좋지 않다.
그것은 국가의 국경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경계는 확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경계가 필요에 응하고 개폐되어야 한다.
항상 덮고 있는지 항상 열고 있는 것은 문제를 일으킨다.
분명히 경계가 존재하면서도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자유와 분별이 있어야 한다.
감정의 문을 열어야 한다.
지식의 문을 열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문을 열어야 한다.
열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고 나갈 수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빛은 많은 색을 만들어낸다.
그 자체로 빛나게 하거나 그 사물을 통해 다른 빛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문을 열면 다양한 빛이 들어와 다양한 색을 창조한다.
나에게 많은 빛이 들어오게 하고, 나를 통해 더 많은 빛이 창조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보자!